발칸의 명암을 그린 균형 잡힌 조감도
발칸사의 권위자 마크 마조워의 대표작 『발칸의 역사』는 발칸의 정체성을 찾고 침략자들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발칸인의 투쟁에 따스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동서양 강대국들에 의해 강요된 종교적, 문화적 차이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무능력 때문이라고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마크 마조워는 이러한 두 가지 관점으로 유럽 남동부의 험난한 역사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 책은 매년 가장 탁월한 대중 역사서에 수여하는 영국의 권위 있는 울프슨 역사상(Wolfson History Prize)을 수상했다. 지은이는 현재 미국 컬럼비아 대학 역사학과 교수이며, 2011년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우수 교수상(Great Teacher Award)을 받았다. 유럽의 주변 지역에 주목하면서 유럽 현대사를 조망함으로써 기존 유럽 현대사 해석에 도전해 왔다.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며 수백 년 동안 큰 전쟁들의 원인이 된 발칸 지역의 문제점들을 외지의 여행가나 외교관들의 시각 자료를 통해 명쾌하게 밝혀 주고 있다. 오스만 지배로 초래된 발칸 전역의 특성, ‘오랜 기간의 실험’으로 이룩된 국가 건설, 발칸 농민층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발달된 민족성 등 이 지역의 고질적인 문제를 탁월한 역사가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한 국가 성립기 이후에 발생한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어 현 분쟁의 역사적 뿌리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한편, 제1, 2차 세계대전과 냉전기에서부터 공산주의 붕괴, 유고연방의 와해, 유럽 남동부의 최근 안정화 노력까지 발칸의 전 역사를 재조명하였다.
수세기 동안 인종적 갈등이 전혀 없던 시기로 있던 발칸의 인종 혼합이 왜 지난 1, 2세기에 느닷없이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었을까? 최근의 발칸 분쟁은 19세기에 비롯된 영토 확장과 민족의 영광에서 기인한다는 점에서 서유럽이나 다른 지역의 분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 점에서 지은이가 “유럽은 발칸 여러 나라에 그들 민족을 규정할 틀을 제공해 주면서 동시에 그들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무기, 즉 현대의 낭만적 민족주의 형태도 함께 제공해 주었다”고 평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 오스만제국은 인종과 종교의 다양성을 조절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오스만제국 말기를 목격한 아놀드 토인비도 분쟁의 원인을 발칸 지역 외곽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최근의 인종 청소 같은 만행의 뿌리는 발칸인의 사고 체계에서 찾을 게 아니라, 현대 기술 자원으로 치르는 내전에서 찾을 일이다”라고 진단한다.
세계 지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래야 이제 고작 200여 년, 실타래처럼 뒤엉킨 ‘피정복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발칸은 그 비극의 역사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시원스레 해법을 찾기 힘든 고질적 문제를 안고 있다. 제국을 네 개의 행정구로 분할하여 4제(帝) 통치를 실시한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이후 제국을 양분하여 두 아들에게 물려준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부터 발칸인은 이미 동서 로마의 경계선을 따라 동방과 서방, 정교회와 가톨릭, 키릴 문자와 라틴 문자의 상반된 문화를 가진 모순된 역사적 과정을 밟아 왔다. 동서 문화가 충돌하는 이 같은 완충적 성격은 발칸이 현대에 들어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져 지배국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이다. 발칸인의 운명은 헝클어진 과거를 정리할 틈도 없이 또다시 타의에 의해 수동적으로 결정되어, 장차 일어날 인종, 종교, 영토적 분규의 싹을 틔운 것이다.
발칸의 역사를 깊게 공부할 수 있는 상세한 참고 문헌 목록과 고급 독자를 위한 상세한 주를 수록하였으며, 발칸 문명을 만들어 낸 역사적 사건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연표까지 마련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 2004년 발행되었던 『발칸의 역사』의 신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