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에 관한 간략하고 정확한 역사책을 찾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 런던 타임스
마르틴 루터가 95개 논제를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에 못 박다
문명의 분수령이자 근대 세계를 창출한 종교개혁의 수려한 조감도
이 책은 2005년 을유문화사에서 발간한 『종교개혁』의 개정판으로, 평생을 종교개혁 연구에 몰두해 온 역사학자가 16세기부터 200여 년에 걸쳐 이루어진 종교개혁의 거대한 흐름을 예리하고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간결하게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르네상스에서 계몽사상으로 이어지는 유럽 역사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한 종교적 혁명일 뿐만 아니라 그 노정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격변을 가져 온 태풍의 눈으로써 기능한 종교개혁을 한 권의 작은 책자에 담아내려고 한 시도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대담하게 입장을 밝힌다. “책이란 따분하기보다는 차라리 틀리는 게 낫다”고 말한 저자는 종교개혁에 대하여 거의 모르는 일반 독자들도 읽기 쉽게 풀어 쓰면서 때로는 중립적인 색조로, 때로는 위트 있는 붓질로 거대한 그림을 그려 나간다.
종교개혁이란 무엇인가?
제1장에서는 종교개혁이라는 용어의 정의와 범주, 역사적 위상에 대해 먼저 살펴본다. 종교개혁은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바와 같이, 시대를 초월한 어느 위대한 지성(루터)이 혜성처럼 나타나 시작된 것도 아니지만 일부 학자의 주장처럼 근대 세계의 형성과 무관하거나 수 세기 동안 되풀이되는 장기적인 종교 전통의 일부도 아니다. 저자는 루터를 전 세계의 미래를 뒤바꾼 영웅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지만 종교개혁의 필수 불가결한 존재로 정당화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종교개혁이 이후에 벌어질 과학혁명, 계몽주의, 프랑스혁명보다 더 위대하지는 않더라도 그에 비견될 만큼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제2장에서부터는 이런 주장에 대한 근거를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루터는 어떻게 신학계에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일으켰는가?
가톨릭 교회에서는 루터가 등장하기 100년 전부터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예수는 첫 번째 기독교인이 아니고, 루터는 루터파가 아니’라는 저자의 말처럼 기존 교회에 대한 저항이 점점 커지는 당시 분위기에서 가톨릭 교도였던 루터의 규탄은 16세기에 돌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1세기 전부터 이어졌던 진부한 대항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루터를 종교개혁의 선구자로 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기존의 다른 시도처럼 개혁의 칼날을 휘두르며 교회 체제를 바꾸려고 한 것이 아니라 부패한 가톨릭 신학을 공격했다는 점이다. 중세 교회는 개인의 참회와 선행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루터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하느님께 닿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구원의 길이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 즉 우리가 아닌 하느님께 있다는 것으로 그의 주장은 가히 종교계에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가져왔다고 평가받는다. 게다가 인쇄술의 발달은 자국어 성서 보급의 원동력이 되어 종교개혁에 불을 붙였다. 이렇게 확산된 루터의 선언은 칼뱅, 츠빙글리 등과 같은 개혁자의 지휘 아래 스위스, 네덜란드, 잉글랜드 등지에서 각각의 지역 문화에 맞는 고유한 양식의 개혁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유럽이 뉴턴이나 다윈을 배출할 수 있었을까?
그중에서도 특히 칼뱅의 개혁은 여러 후계자들을 거쳐 견고한 사상으로 성장하면서 세계 여러 곳에 정치,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칼뱅주의를 베버의 유명한 저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함께 소개하면서 프로테스탄티즘을 정통 루터파와 칼뱅파 너머의 신교(퀘이커교, 감리교, 청교도 등)와 연관시킨다. 자결 정신, 개인주의, 독립 정신 등으로 대변되는 신교의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겉보기에는 아주 보수적이었지만 그 안에 세상을 변모시키는 내적인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칼뱅주의로 범위를 국한하지 않더라도 종교개혁은 그 자체로 정신의 해방이고 자유로운 지식의 소통이었다.
저자는 종교개혁의 배경, 루터의 선언, 가톨릭의 반종교개혁, 정치와 자본주의 정신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사건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종교개혁을 유럽 문명의 분수령 또는 계몽주의, 과학혁명, 근대 세계의 선결 요건으로 내세움으로써 이 거대한 주제에 대한 존경심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본문 중에서
근대인이라기보다 중세인이었던 마르틴 루터는 낡은 질문들에 대하여 새로운 답변들을 제시했다. 그는 결코 새로운 질문은 제시하지 않았다.
-<1. 종교개혁이라는 용어> 중에서
종교개혁은 말들로 넘쳐났다. 종교개혁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역사학자는 자신의 그물이 말들의 무게로 찢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루터의 입과 펜에서 말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30년 동안 보름에 한 권 꼴로 책을 냈으니 그의 저작을 모두 오늘날의 표준판으로 낸다면 100권의 거질(巨帙)이 될 것이다.
- <3. 말, 언어, 책> 중에서
종교개혁으로 형태를 잡은 프로테스탄티즘과 트리엔트 공의회에 의해 재편성된 가톨릭주의는 그 후 서구 문명의 두 가지 양태로 자리 잡았다. 그 둘 사이의 간극은 본질적으로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차이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신의 형상을 한 인간의 창조가 계속하여 앞을 향해 진척되다가 그리스도의 인간 구원 속에서 영광스럽게 완성되는가(가톨릭주의) 아니면 인간은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비천한 창조물로서, 신의 압도적인 은총 없이는 버러지에 불과한 존재인가(프로테스탄티즘) …… 양자의 차이는 또한 화려한 루벤스와 수수한 렘브란트의 차이이다.
- <4. 루터는 복음을 발견하고 교회에 도전하다> 중에서
1517년 10월 31일에 일어난 사건은 어둠 속에서 교회의 탑으로 올라가는 길을 더듬어 찾고 있는 한 남자? 그가 밧줄을 잡고 종을 치자 온 마을 사람들이 깨어난다 ?에 비유되었다. 루터가 95개의 논제를 작성한 것이 단지 학문적 논의를 일으키기 위한 의도였는지, 아니면 교회를 무시하는 표시로서 그것을 ‘붙였는지’ 여부는 몇 달도 되지 않아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95개의 논제는 인쇄업자의 손으로 들어간 지 얼마 후 독일 전역의 대중에게 라틴어뿐만 아니라 독일어로 널리 읽혔다. 마치 인쇄술이 발명된 이래 60년 동안 이 순간을 바라며 제자리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 <4. 루터는 복음을 발견하고 교회에 도전하다> 중에서
저자
패트릭 콜린슨
패트릭 콜린슨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런던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케임브리지 대학, 시드니 대학, 캔터베리의 켄트 대학 등에서 현대사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이다. 영국 학술원과 오스트레일리아 인문학술원의 회원인 그는 16, 17세기에 정통한 역사학자로 권위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국가 훈장(CBE 작위)을 수여받았다.
저서로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퓨리턴 운동The Elizabethan Puritan Movement》,《프로테스탄트들의 종교: 영국 사회 속의 교회1559~1625The Religion of Protestants: The Church in English Society1559~1625》,《엘리자베스 시대 관련 논문집Elizabethan Essays》 등이 있고, 《옥스퍼드 브리티시 제도 소사: 16세기The Short Oxford History of the British Isles: the Sixteenth Century》를 책임 편집하였다.
역자
이종인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성균관대학교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전문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 『전문 번역가의 길』이 있고, 역서로는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고대 그리스의 역사』, 『카이사르의 죽음』, 『문화가 중요하다』, 『만약에』, 『워킹 더 바이블』, 『성의 페르소나』, 『처칠: 세기의 영웅』 등 100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