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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과 만나기 가장 쉬운 국내서
경제학에 심리학이 융합된 행동경제학이 태동한 이래로 국내에서도 행동경제학과 관련한 도서를 만나기는 어렵지 않지만 대부분은 해외의 권위 있는 학자나 유명 저자의 저작물이다. 『사람은 왜 대충 합리적인가』의 저자는 시중에 나와 있는 행동경제학의 책들이 너무 어렵거나 내용이 부실한 점을 우려하여 이 책을 집필하였다. 이제 걸음마 단계일 뿐인 행동경제학을 과장된 곡해 없이 알리고자 그간의 연구 성과와 실험들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친구와 대화하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용의자의 딜레마’나 ‘휴리스틱’ 같은 석학들의 이론이 저자의 유머가 가득한 사례와 설명으로 재탄생하는 접점도 흥미롭다.
새롭게 배우는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경제학’
경제학은 인간의 경제 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임에도 경제 위기를 예측하지 못하거나 대응책을 제시하기는커녕 현실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경제 현상들조차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비난에 부닥쳐 왔다. 이는 기존의 주류경제학이 인간을 이기적 동기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의 욕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라고 정의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 이후로 발전한 모든 경제학의 논리는 ’이기적인 인간의 합리적인 소비 활동’이라는 전제를 따르고 있는데, 문제는 인간이 반드시 이기적이지만도 않고 반드시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도 않다는 점이다. 첫 단추를 잘못 채운 바람에 발생한 오류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경제 현상을 완벽히 설명하지 못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이런 경제학의 부족함을 인식한 몇몇 경제학자들은 인간 행동의 배후에는 합리성보다는 더 복잡하고 때로는 어려운 심리와 정서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심리학과 경제학의 유사점을 토대로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냈다. 저자는 행동경제학에 오래전부터 관심을 둔 학자로서 경제 현상의 주체는 사람이고, 경제 활동은 사람의 선택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경제학이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음은 어떻게 경제를 움직이는가
경제학이 상아탑의 실험실에서 벗어나 현실의 모습을 담으려면 우선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정의부터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이기심, 합리성, 그리고 자기이해라는 세 가지를 조목조목 반박한다. 우선 이기심에 관해서는 대형 마트에 시식 코너가 있는 이유를 설명하며 인간은 존중과 배려에 따라 행동하기도 하고, 본성이 아닌 학습과 경험에 의해 행동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인간은 교과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최대의 효용을 얻기 위해서 완벽하게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휴리스틱’하게 행동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행동경제학의 선구자 대니얼 카너먼이 만든 단어 ‘휴리스틱’은 주먹구구식으로 어림잡아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최대한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 선택을 결정한다. 또한 뚱뚱한 사람은 많이 먹을 것이라는 편견과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강렬한 이유, 맛있는 음식을 가장 나중에 먹는 이유 등도 휴리스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의 비합리성에 대한 설명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이다. 이것은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마지막 개념인 자기이해와 연관되는데 그 이유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엇을 선호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뿐더러 시장에서는 정보가 완전히 공개되지 않고, 공개된 정보조차 완전하지 않다. 이렇게 자기 자신, 정보, 확률 등에 대한 무지가 비합리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고스톱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로또를 사는 것처럼 사람의 이런 비일관적이고 모순적인 행동들이 반드시 비합리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게임이론에서 가장 유명한 법칙 중 하나인 ‘용의자의 딜레마’에서 알 수 있듯이 합리적인 선택이 오히려 최악의 결과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비용과 편익을 고려해 보면 휴리스틱이 더 합리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행동경제학은 주류경제학에서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이라고 치부되는 행동을 지극히 인간적인 행동이라 보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선택들이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저자는 행동경제학의 이론을 옹호하면서도 주류경제학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은 조심스럽게 경계한다. 완벽하게 합리적인 인간이 존재할 수 없듯이 인간이 완전히 비합리적이라는 주장도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합리적 인간이 왜 때때로 비합리적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행동경제학이며, 비합리성 또한 합리성의 일부라고 말한다.
본문 중에서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빵을 먹을 것인가 라면을 먹을 것인가, 버스를 탈 것인가 지하철을 탈 것인가 등등 우리가 삶을 살면서 마주치는 숱한 선택들 앞에서 어떻게 선택하면 내가 더 행복해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바로 경제학이다. 우리가 선택을 잘 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알아야 하고, 다음으로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하는 방법에 대한 탐색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고 싶다. 누가 선택하는가? 당연히 사람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누구의 것인가? 또 당연히 사람이다. 그러므로 선택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수학적 논리 이전에 먼저 사람의 본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경제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 또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가를 탐구하는 것이 바로 경제학이다. 그렇다면 경제학이 경제학답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바로 사람에 대한 이해, 인간의 심리와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다.
행동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선구자들 가운데 두 사람인 트버스키와 카너먼은 실제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휴리스틱은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 꼭 맞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과서에서도 휴리스틱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주먹구구식 행동’, ‘어림짐작으로 행동하기’, ‘대충 선택하기 정도’이다. 예전에 유행했던 어느 개그맨의 표현을 빌면 “그까이 거 대충”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밥을 먹을까, 빵을 먹을까 하는 선택에 직면했을 때 합리적인 경제인이라면 당연히 밥과 빵이 주는 편익과 비용을 정확하게 계산하여 겨자씨만큼이라도 더 효용이 큰 쪽을 선택한다. 그러나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 과연 여러분은 그렇게 행동했는가?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 하고 묻는 동료나 친구의 질문에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아무거나.” 바로 이 “아무거나”가 휴리스틱이다.
희망효용은 미래의 체험이 주는 효용이다. 당신은 내일 김태희와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과연 오늘 밤 잠이 올까? 밤새 뜬눈으로 지새울 망정 오늘 밤은 당신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밤일 것이다. 바로 희망효용 때문이다. 때로는 김태희와 마주 앉아 있는 그 순간의 체험효용보다 그와의 데이트를 기다리는 동안의 희망효용이 더 클 수도 있다. 물론 내가 김태희와 데이트를 할 확률은 로또에 열두 번 연속으로 당첨될 확률보다 낮겠지만, 이런 예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흔히 발견된다.
프로 야구에서 좋은 타자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타율이 3할을 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두산 베어스의 김현수 선수의 별명은 ‘4할도 못 치는 바보’다. 언제나 3할이 넘는 선수인데 4할을 못 친다고 바보라니? 한 해 홈런을 10개 이상 치면 강타자로 불린다. 하지만 이대호는 20개를 쳐도 요즘 타격이 부진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프로스펙트 이론을 전개하면서 이러한 현상을 ‘준거점 의존성’이라는 개념으로 정립하였다. 사람들이 손실과 이익을 평가할 때 그 기준은 반드시 원점, 즉 영(0)은 아니며, 준거점이 달라짐에 따라 사람들의 평가도 달라진다는 뜻이다. 하우스 푸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서울의 은마아파트 주민들이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저자
조준현
부산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금 경제학』, 『서프라이즈 경제학』, 『중산층이라는 착각』, 『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자본주의』,『승자의 음모』 등의 책을 썼다. 현재 부산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이자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여러 신문과 잡지 등에 경제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