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용의 비늘을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가?
위대한 군주와 현명한 신하들의 천하 경영법
당 제국은 서기 7세기에 세계의 중심이자 대제국으로 발돋움했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는 동서양의 수많은 상인들이 오고 갔으며 세계 각지의 문물이 모여 들어 서로 섞이고 융합하면서 지금까지 찬탄하게 만드는 찬란한 당삼채를 비롯하여 화려한 세계 문화를 꽃피웠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위대한 군주가 바로 정관지치로 유명한 당태종 이세민이다. 정관정요는 이러한 세계 제국을 이룩했던 당태종과 신하들이 천하 경영을 놓고 서로 묻고 답하며, 토론한 기록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거대한 제국을 무리 없이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모든 정수가 집대성되어 있는 것이 바로 정관정요다.
정관정요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제왕학의 교범이자 경영학의 모범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리학이 융성하기 전까지 이 책은 역대 왕조들의 제왕이 읽고 공부해야 할 필독서 중 하나였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경영학의 롤 모델로 여겨지고 있다. 일찍이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는 경영학의 원리를 배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동양 고전으로 정관정요를 추천하기도 했다.
정관정요는 여러 판본이 혼재되어 있으며 편제시기를 정확히 특정할 수 없어 아직까지도 학계에서 논란이 분분하다. 책에서는 정관정요의 판본과 편제시기에 관한 네 가지 설을 상세히 설명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은 여러 판본 중에서도 과본(戈本)을 토대로 세밀한 교주(校注) 작업을 벌인 셰바오청의 『정관정요집교(貞觀政要集敎)』를 저본으로 삼고 있다. 셰바오청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로 수당대사(隋唐代史)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가 집필한 『정관정요집교』는 일본의 판본까지 모두 참조해 정밀한 교주를 가한 점에서 독보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주석서로는 유첸의 『정관정요』와 예광다 등이 주석을 단 『정관정요전역(貞觀政要全譯)』을 많이 참고하여 독자들에게 정관정요의 내용을 보다 더 잘 알 수 있도록 설명해 주고 있다.
아울러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책 속의 책처럼 역자의 ‘정관정요 깊이 읽기’가 별도로 수록되어 정관정요를 읽는 독자들에게 보다 깊이 있는 독서가 가능하도록 일종의 나침반이자 배경지식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자는 이 챕터를 통해 당제국의 성립 배경과 역사, 문화를 소개하는 한편, 정관정요를 있게 한 당태종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사람을 얻고, 사람을 부리는 인재 경영에 관한 영원한 고전
정관정요가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계속 회자된 이유는 이 책이 심오한 정치 철학과 경영 정신, 그리고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정관정요의 「규간론(規諫論)」에 따르면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하게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득실을 분명히 할 수 있다”는 구절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정관정요의 이념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정관정요는 한 개인의 과실뿐만 아니라 사회와 그 시대의 상황까지 비춰보고 반성하게 만드는 하나의 거울이다. 당태종의 충실한 신하이자 정관지치를 가능하게 했던 현신 위징은 “나무가 무성히 자랄 것을 바라는 자는 반드시 그 뿌리를 견고히 하고, 물을 멀리까지 보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샘의 근원을 깊게 하고, 나라의 안녕을 생각하는 자는 반드시 그 덕의(德義)를 쌓는다”고 말하며 수성의 논리를 설명하고 있다. 기초를 튼튼히 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닦는 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필요한 자기계발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정관정요에는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고 새겨 두어야 할 경구들이 많이 담겨 있어 시대를 뛰어넘는 인문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저자
오긍
당나라 고종 3년(670년)에 태어나 현종 8년(749년)에 생을 마감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지런히 학문을 연마하여 경학과 사학에 해박한 식견을 보였던 오긍은 무측천 때 사관(史館)에 들어가 국사(國史)를 편수했다. 중종 때 우보궐(右補闕)과 기거랑(起居郞), 수부낭중(水部郎中)을 역임했으며, 현종(玄宗) 때 위위소경(衛尉少卿)에 올라 수문관학사(修文館學士)를 겸했고, 태자좌서자(太子左庶子)까지 올랐다. 직필로 유명한 그는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어 항상 바르게 서술하려 노력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동호(董狐)’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는 직필로 유명한 진나라의 사관에서 유래한 ‘동호지필(董狐之筆)’에서 따온 말이다. 오긍은 유지기 등과 함께 『무후실록(武后實錄)』을 편찬하기도 했다. 이때 재상 장열이 위원충과 관련된 일을 여러 차례 개정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저서로 『당서(唐書)』, 『당춘추(唐春秋)』, 『정관정요(貞觀政要)』 등이 있다.
역자
신동준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이 사는 길을 찾는 고전 연구가이자 평론가로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안목을 바탕으로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고 재학 시절 한학의 대가인 청명 임창순 선생 밑에서 사서삼경과 『춘추좌전』, 『조선왕조실록』 등을 배웠으며, 서울대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등에서 10여 년간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1994년 다시 모교 박사 과정에 들어가 동양 정치사상을 전공했고, 일본의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춘추전국시대 정치사상 비교연구」로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후흑학』, 『인물로 읽는 중국 현대사』, 『삼국지 군웅과 치도를 논하다』, 『조조 사람혁명』, 『팍스 시니카』, 『열국지 교양강의』, 『춘추전국의 영웅들』(전 3권), 『CEO의 삼국지』,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사마천의 부자경제학』 등이 있고, 역서로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초한지』, 『자치통감 삼국지』(전 2권), 『춘추좌전』(전 3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