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200주년에 새롭게 만나는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연애 소설
사소한 일상을 통해 보편성의 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고전이 된 풍속 소설
“19세기 소설, 예를 들면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와 그들이 쓴 소설 역시 내용적으로는 거의 같다 할 수 있고 반복이랄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정형화되어 있어요. 하지만 질리지 않아요. 제인 오스틴은 몇 번을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 무라카미 하루키
120여 년 전부터 수많은 ‘제인 추종자(Janeite, 제인 오스틴의 열렬한 애독자)’를 거느린 제인 오스틴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오만과 편견』이 출간 2백주년에 을유문화사에서 새롭게 출간되었다. 저자 스스로 “가볍고 밝고 반짝거려서 그늘이 필요하다”고 말한 이 소설은 20세기 말까지 칙릿 소설로 분류되었을 만큼 풍속 소설의 전형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청춘남녀의 만남에서부터 연애, 갈등, 화해, 결혼에 이르기까지 연애 소설의 상투적인 공식을 따르고 있음에도 수많은 독자는 『오만과 편견』을 고전의 반열에 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일반 독자뿐 아니라 비평가와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고, 수백 년 전의 이야기임에도 현대의 독자와 호흡하고, 여러 번 읽어도 진력나지 않게 하는 힘의 연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찰스 디킨스나 샬럿 브론테식의 강하고 진한 질감이 아닌 차분하고 흐릿한 색채로 19세기 영국의 흔적을 소소하게 담고 있으나 결코 초라하거나 궁벽하지 않다. 당대의 자연 풍광, 관습, 문물, 표현, 도덕은 오스틴의 펜을 통해 실감나게 재현되고, 매력적인 인물들은 재치 있는 풍자, 섬세한 심리 묘사를 구현하는데 훌륭한 매개체가 된다.
자신의 명석함을 뽐내는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오만을 비웃고, 다아시는 인물과 집안 배경으로 그녀를 판단한다. 서로에 대한 첫인상과 당대 영국의 중요한 도덕적 관념이었던 ‘오만’과 ‘편견’은 스토리라인을 지배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무도회, 산책, 대화 등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결혼이라는 결말을 향해 전개되지만 결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로 작용한다. 로맨스를 특수화하지 않고 일상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부분이 바로 『오만과 편견』이 다른 풍속 소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게다가 미숙한 주인공들이 사회의식과 자기애의 껍질을 깨는 과정에서 독자는 보편성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다들 지키는 게 매너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매너는 ‘매너리즘’이 되기 쉽고 진실로 좋은 매너는 드물게 찾아온다. 풍속 소설로서 『오만과 편견』의 궁극적인 아이러니가 여기에 있고, 이는 『오만과 편견』을 두고두고 다시 읽을 수 있는 소설로 만드는 힘이다. 결국 다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란 우리 시대 ‘고전’의 정의이다.
영국의 작은 마을 하트퍼드셔에는 개성 넘치는 베넷 가족이 살고 있다. 냉소적인 유머와 내성적인 성격이 뒤섞인 아버지, 딸들을 결혼시키는 것만이 삶의 목적인 교양 없는 어머니, 마음이 곱고 아름다운 첫째 딸 제인, 영리하고 재치 넘치는 둘째 딸 엘리자베스, 자매 중 제일 못생겨 교양에 매진하지만 잘난 척하는 셋째 딸 메리, 허영심 많고 무식하고 게으른 키티와 리디아가 그들이다. 어느 날, 이들의 이웃에 부유하고 매력적인 청년 빙리가 이사를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도회에서 처음 만난 빙리와 제인은 첫눈에 반하지만 빙리의 친구인 다아시는 오만한 태도로 엘리자베스를 불쾌하게 한다. 그는 어느 순간 엘리자베스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베넷 가족의 경박함을 혐오해서 청혼을 망설인다. 그러다 결국 엘리자베스에게 고백하는데…….
저자
제인 오스틴
1775년 12월 16일 영국 햄프셔 주 스티븐턴에서 지역 교구의 목사였던 조지 오스틴과 커샌드라의 6남 2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1783년 옥스퍼드에 있는 친척에게 잠깐 개인 지도를 받고, 1785년부터 일 년 동안 여자 기숙학교를 다녔다. 그 뒤에는 계속 집에서 프랑스어, 피아노, 역사, 그림, 바느질 등의 교육을 받았다.
1801년 아버지가 은퇴하자 부모와 언니 커샌드라와 함께 온천 휴양지인 바스로 이사했다. 1805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그녀는 가족과 함께 사우샘프턴으로 이사하였고, 1809년 다시 초턴으로 이사하여 생애가 끝날 때까지 그곳에서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제인 오스틴은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독서에 심취했고 십대 시절부터 단편과 희곡 등의 소품을 습작하였다.
1795년 ‘엘리너와 메리앤(Elinor and Marianne)’을 집필하기 시작하였고, 21세가 되던 해인 1796년에는 훗날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된 ‘첫인상(First Impressions)’을 집필하였다. 1797년에는 아버지가 출판사에 ‘첫인상’의 원고를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그녀는 기존의 소설들을 수정하는 등 계속 집필 활동을 이어나갔고 나중에『노생거 수도원』으로 출판된 ‘수전(Susan)’을 완성하였다. 초턴 시절 그녀는 가장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하는데 수차례 수정 작업 끝에 35세가 되던 해인 1811년 ‘엘리너와 메리앤’을 『분별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으로 개작하여 출간하였고, 뒤이어 1813년에 『오만과 편견』, 1814년 『맨스필드 파크(Mansfield Park)』, 1815년 『에마(Emma)』를 잇달아 출간하였다. 1815년에 『설득(Persuasion)』을 집필하기 시작해 이듬해 완성하였으나 이때부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1817년 마지막 작품인 ‘샌디턴(Sanditon)’ 집필 중 치료를 받으러 윈체스터를 방문하나 그해 7월 18일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며칠 후 윈체스터 성당에 안장되었다.
역자
조선정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을 거쳐 미국 Texas A&M 대학에서 영국소설과 여성작가를 전공했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재직하면서 주로 19세기 영국문학을 가르치고 연구한다. 저서로 『제인 오스틴의 여성적 글쓰기: 『오만과 편견』 새롭게 읽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