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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세계문학전집_58

이력서들

Lebenslaufe

알렉산더 클루게 ,이호성

396쪽, 128x188, 13,000원

2012년 12월 20일

ISBN. 978-89-324-0390-8

이 도서의 판매처

역사는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써 내려가고 또 기억하는가

아이러니한 허구 속에서 삶의 핍진성을 보여 주는 다채로운 이력들

 

이 책은 ‘뉴 저먼 시네마(New German Cinema)’의 대부이자 ‘오버하우젠 선언’을 주도한 영화감독 알렉산더 클루게의 대표작으로 그의 문학적 세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단편집이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세계사의 큰 획을 그은 사건 전후의 수많은 개인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전쟁, 살인, 망명, 강제수용소의 실험, 실정법과 처벌 등 매우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다양하고 복잡한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지나친 엄숙주의로 흐르지 않으면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사건의 본질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여러 개성적인 캐릭터들의 이력을 쫓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악과 정의의 문제, 현대 사회에서의 감정과 사랑의 문제, 추모와 희망으로 기능하는 이야기 과제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알렉산더 클루게는 이러한 묵직한 주제들을 여러 다양한 실험적인 서사 기법을 통해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역사적 사건들과 오버랩 되는 동시에, 현실과도 중첩되면서 되풀이되는 역사의 굴레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독자들에게 비틀기와 당혹감을 느끼게 만드는 이중적인 효과를 일으킨다. 이러한 알렉산더 클루게만의 서사 미학은 작품 곳곳에서 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수용소에서 포로들의 낙태 수술을 시행하고 이를 가지고 벌이는 인체실험을 다룬 「사랑에 대한 어떤 실험」에서는 ‘엿보기’와 같은 형식으로 제삼자의 눈으로 시종일관 무미건조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킴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러한 실험을 감행했던 이들과 비슷한 위치에 놓이게 만든다. 사랑마저도 축제의 이벤트에 어울리는 하나의 소비재처럼 사용되는 현실을 꼬집고 있는 「만프레트 슈미트」를 보면 소설의 말미에 마치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처럼 등장인물이 죽 소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작품 자체도 마치 자잘한 여러 신처럼 나뉘어져 있다.

이러한 독특한 그의 작품 세계는 서사 기법뿐만 아니라 서사 그 자체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책의 수록 작품 중 하나인 「협동을 통한 범죄의 해체」에서는 포주와 창녀가 등장해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된 죽은 이를 다시 살려내는 과정을 현실감 있게 펼쳐 보인다. 제목 그대로 범죄자인 두 사람이 협동을 통해 누군가가 일으킨 다른 범죄를 ‘해체’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처럼 사실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하고 부조리한 설정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이 단편 소설집은 전후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이자 독일 문학이 지닌 이색적인 감수성과 심미안을 체현하고 있는 작품집이라 할 수 있다.

 

 

항상 희망을 품는 자는 노래하며 죽는다

거대한 역사적 파국 속에서 작은 희망의 출구 찾기

 

전쟁 기간 동안 우생학적 연구 차원에서 유태계 정치위원의 두개골을 확보하는 일을 맡은 한 군인의 이야기를 다룬 「중위 불랑제」의 주인공인 불랑제는 유태인 학살의 전범이었던 아이히만을 떠올리게 한다. 클루게가 보여주는 불랑제의 모습은 아이히만의 거울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이히만이 서류상으로 위에서 명령을 내린 사람이라면 불랑제는 직접 가서 그 명령을 실행한 사람이란 차이만 있을 뿐이다. 실제로 아이히만을 연구한 아렌트에 따르면 유태인 대량 학살을 다룬 그의 재판에서 의학적 연구 등은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고 한다. 바로 그 제외된 부분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 불랑제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불랑제와 아이히만이라고 하는 이 둘에게는 ‘개인의 사소한 욕망’과 ‘천박함’, ‘사회적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공통적인 행위 동기가 있다. 그러나 이것만을 가지고 커다란 죄악이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이들은 괴물이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욕망을 지닌 평범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이 가공할 만한 범죄와 범죄자들에게서 우리는 더욱 기괴함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기괴함은 한 명의 살인자를 뒤쫓으면서 주위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살육은 외면하는 「검찰관 셸리하」에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검찰관 셸리하는 전쟁 중에 놓치게 된 살인 용의자의 뒤를 쫓는다. 그러면서 그는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무수히 많은 살인자들을 만나지만 이를 모두 무시하고 오직 하나의 목표가 된 살인자만을 쫓다가 결국 소련군에 잡히고 만다. 나중에 풀려난 그는 살인 용의자가 건드릴 수 없는 권력자가 된 것을 보고 쫓는 일을 단념하고 만다. 특히 이 소설의 말미에 ‘로터리 클럽’ 회원들과 벌이는 토론은 ‘정의’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보여주는 동시에 말장난이나 혹은 무수한 의미 없는 잡담을 보여주며 실제로는 입으로만 정의를 외칠 뿐, 아무도 제대로 그 개념을 정의내리지 못하고 또 추구하지도 못하는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가치와 관념, 규범 등이 전복된 상황은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범죄를 저지르며 떠돌아다니는 「아니타 G」의 상황과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알렉산더 클루게의 『이력서들』은 여러 모로 우리의 시대적 상황과 연관되는 작품집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불거져 나와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친일파 단죄 문제, 참혹한 6·25 전쟁의 혼란기에서 벌어진 각종 인권 탄압 문제 등을 겪은 우리로서는 이 작품집이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역사적 단죄란 정의롭게 이뤄질 수 있는가, 그렇다면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에 반대되는 악은 누가 규정하는가, 그 악의 실체는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담고 있는 『이력서들』은 다채로운 인물들의 이력을 통해 엄혹하게 존재하는 한 조각의 진실성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서문
중위 불랑제
어떤 태도의 소멸―검찰관 셸리하
포자 양(孃)
E. 슁케
아니타 G
만프레트 슈미트
사랑에 대한 어떤 실험
직업 변경
코르티
추가적인 이야기―스페인 보초병 | 클롭파우의 교육가 | 학자의 사명―만드로프 | 항상 희망을 품는 자는 노래하며 죽는다 | 협동적 태도 | 협동을
통한 범죄의 해체 | 알레비쉬의 다이아몬드 | 장례식 참석자 명단 | 기티의 종말
작가 후기

해설―거대한 파국과 작은 희망의 출구 찾기
판본 소개
알렉산더 클루게 연보

저자

알렉산더 클루게

알렉산더 클루게는 법률가, 작가, 영화감독, 교육자,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자, 인터뷰 진행자, 문화이론가 및 문화정책 비평가로 다양한 활동을 보여 주고 있다. 매우 박학다식한 작가로 다루는 소재도 문학, 예술, 역사, 경제, 사회의 영역을 넘어 물리, 화학, 생물학 등 자연 과학에 이를 정도로 폭이 넓다. 그는 ‘뉴 저먼 시네마(New German Cinema)’의 ‘오버하우젠 선언’을 주도한 영화감독으로만 주로 알려져 있지만, 독일 내에서는 위와 같은 여러 방면의 활동을 통해 문화계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알렉산더 클루게는 1932년 독일 중부의 작은 도시 할버슈타트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가 열세 살이 되던 해인 1945년 4월에 연합군의 폭격으로 이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클루게는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를 따라 베를린으로 이주한다. 그는 어린 시절의 이 두 경험이 훗날 자신에게 계속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과 역사학, 종교음악(오르간)을 공부하고 1956년 법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1958년 사법고시를 치른 뒤 베를린과 뮌헨에서 변호사로 일했는데, 이때 프랑크푸르트 사회 연구소에서 법률고문으로 일을 하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친분을 쌓는다. 또 아도르노의 소개로 영화감독 프리츠 랑을 알게 되고 랑이 두 편의 영화를 찍는 동안 견습으로 같이 일하면서 첫 단편영화 「돌에 담긴 잔인함」을 찍었다. 1962년 첫 문학작품 『이력서들』을 출간하고 당시 독일 대표 문학 동인인 47그룹에 들어갔다. 1966년에 첫 장편영화 「어제와의 이별」로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하고, 1968년에는 영화 「서커스단의 예술가들」로 다시 베니스 영화제에서 금사자상을 수상했다. 80년대 이후 DCTP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사를 설립해 상업방송에서 실험적인 형식의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클루게는 자신의 영화에 덧붙여 시나리오를 출판하기도 했는데, 실제 역사 자료들, 기록물, 영상과 픽션 사이의 긴장과 협력관계들을 보여주는 많은 문학 작품들을 썼다. 『이력서들』 외에 주요 문학 작품들로는 『전투 묘사』, 『치명적 종말로 가는 배움의 과정』, 『감정의 연대기』, 『악마가 남긴 틈새』, 『문을 서로 마주 댄 다른 삶』, 『다섯 번째 책. 새로운 이력서들』 등이 있다.

역자

이호성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독어독문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하였다. 동 대학 독어독문학과에서 「알렉산더 클루게의 『이력서들』에 나타난 ‘대안적’ 서사의 양상」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DAAD(독일 학술 교류처)의 장학생으로 알렉산더 클루게에 관한 박사 논문 「권위와 협동―알렉산더 클루게의 매체 작업의 원칙에 대하여」를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