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이보 안드리치의 걸작 중단편
- 20세기 발칸의 호메로스, 이보 안드리치가 생생하게 그린 동서양의 충돌과 혼합
세르비아어 원전 번역
1961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1961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20세기 발칸의 호메로스’라 불리며 구유고 연방에서 여전히 가장 많이 애독되는 작가인 이보 안드리치(Ivo Andrić, 1892~1975)의 대표 중단편집이 출간되었다. 국내에서 이보 안드리치에 관한 독보적인 연구자로 꼽히는 김지향(한국외대 세르비아·크로아티아어과) 교수가 세르비아어 원전을 대본으로 옮겼다.
안드리치는 19세기가 저물어 갈 무렵인 1892년에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났다. 당시의 유고슬라비아는 제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여섯 개의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연방 국가로서, 모자이크의 나라라고도 불렸다. 안드리치가 태어난 곳은 터키의 지배 영향으로 동양적 이미지를 물씬 담고 있던 보스니아였으며, 성인이 된 이후에는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에서 주로 지냈다. 이질적인 문화가 서로 교차하는 이런 생애적인 요소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풍요로운 원천으로 작용했다.
안드리치 작품의 주된 배경은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보스니아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보스니아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한때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무너지고 기독교 국가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이 지배하던 과도기로서의 보스니아였다. 여기에는 원주민 회교도, 세르비아 정교인, 가톨릭교도, 유대교도, 터키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의 점령 후 제국에서 건너온 외국인 등 다양한 종교-문화가 공존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안드리치는 서로 대립하는 두 세계, 즉 회교 문화와 기독교 문화의 끊임없는 충돌과 뿌리 깊은 증오심, 그리고 서로 혼란스럽게 얽히면서 만들어 내는 보스니아만의 독특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수많은 극적인 상황, 충돌, 다채롭게 변화하는 색깔, 끊임없이 이어지는 정신적, 사회적 긴장……. 보스니아는 그야말로 두 문화가 만나고 섞이고 대결하고 융화하는 또 다른 커다란 세계였던 것이다. 고향의 이런 문화적 혼란은 안드리치를 인간적으로뿐만 아니라 작가로서도 매료시킨 바, 그는 이것을 특수성에 매몰되지 않고 보편적 시각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테마로 담아냈다.
안드리치의 걸작 중단편 여섯 편을 묶은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저주받은 안뜰(Prokleta avlija)」이다. 안드리치 소설의 배경은 줄곧 터키 지배하의 보스니아이지만, 이 작품은 보스니아가 아닌 터키가 배경이다.
각지에서 끌려온 수형자들로 가득한 이스탄불의 한 구치소. 바깥세상과 철저히 절연되어 있는 이곳은 ‘저주받은 안뜰’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사기꾼과 강도, 살인범, 소매치기, 도박사, 주정꾼, 무전 취식자, 기물 파괴자, 마약범, 억울하게 누명 쓴 자, 저능아, 인생의 낙오자들 등 더 이상 바닥일 수 없는 부류의 인간들로 가득하다. 이들 중 어떤 이는 재판을 위해 심문을 받고, 어떤 이는 단기형을 치르고, 또 어떤 이는 이스탄불의 든든한 비호나 연줄로 석방되고, 어떤 이는 소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유형지로 기약 없이 떠난다. 그들 모두는 이곳에서 운명이 결정된다.
보스니아에서 온 페타르 수사는 석연치 않은 죄목으로 터키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이곳 ‘안뜰’로 압송되었다. 그가 보기에 이곳에는 이성이 성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하임의 말처럼, 모두가 병자이고 광인이고, 간수도 수인도 스파이도 모두 그러하다. 페타르 수사는 이 얽히고설킨 광기의 망을 벗어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든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차밀이라는 이름의 한 터키 청년이 이곳에 들어오는데…….
페타르 수사는 「저주받은 안뜰」뿐만 아니라 「몸통(Čaša)」, 「술잔(Trup)」, 「물방앗간에서(U vodenici)」, 「삼사라 여인숙에서 일어난 우스운 이야기(Šala u Samsarinom hanu)」에서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각각의 이야기는 모두 페타르 수사가 몸소 겪었거나 들은 희한하고 기이한 것들로, 동양과 서양으로 대비되는 전혀 다른 두 개의 문화가 공존하는 매우 색다르고 강렬한 세계를 보여 준다.
「몸통」에서는 한때 시리아를 정복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목을 자르고 태우는 등 가히 모든 악과 광기의 산증인이라 할 챌래비 하피즈의 운명을, 「술잔」에서는 회교도 기질이 강했던 작고한 니콜라 그라니치 수사와 그가 남긴 술잔에 관하여, 「물방앗간에서」에서는 페타르 수사가 어렸을 적에 그라오비크 아래 물방앗간에서 만났다는 악마에 관하여, 「삼사라 여인숙에서 일어난 우스운 이야기」에서는 젊은 날 페타르 수사가 야만스럽고 난폭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악한들에게 붙잡혀 그들에 의해 졸지에 결혼할 뻔한 사연을 이야기한다. 한편 보스니아의 한 고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올루야크 마을」에서는 무데리조비치 가(家)라는 한 일가를 중심으로 그들의 광기와 파멸을 이야기한다.
저자
이보 안드리치
1892년 보스니아 트라브니크에서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활이 여의치 못하자 어머니는 안드리치를 비셰그라드에 있는 유복한 고모에게 맡겼다. 비셰그라드의 드리나 강에는 약 400년 전 옛 터키 제국 고관이 세웠다는 유명한 다리가 있는데, 안드리치는 날마다 이 다리를 건너면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훗날 그는 이 다리를 중심으로 400여 년에 걸쳐 펼쳐진 이곳 사람들의 삶을 대하소설로 형상화했는데, 『드리나 강의 다리』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그의 또 다른 작품인 『트라브니크의 연대기』, 『아가씨』와 더불어 ‘보스니아 3부작’으로 불린다.
12세 때 사라예보에 있는 벨리카 김나지야에 입학하여 새로운 지적 세계에 눈을 떴다. 한편 이 당시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의 점령 아래 있던 남슬라브 민족의 해방을 주장하던 진보적 민족 단체인 ‘청년 보스니아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직후에는 청년 보스니아 운동에 가담했다는 죄로 오스트리아 당국에 체포되었으며, 1917년에 특사로 석방되었다. 그 후 그라츠 대학에서 학업을 재개하여 「터키 지배의 영향하에서 보스니아 정신 생활의 발전」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보스니아의 과거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 이후 발표하는 작품들의 토대가 되었다. 1920~1930년대에는 외교관으로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스위스 등 유럽 각국에 주재하기도 했다.
몇몇 예외도 있지만, 그의 작품의 주된 배경은 보스니아다. 이곳은 인종적, 지리적으로는 유럽에 속해 있으면서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 이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 이어 유고 연방의 일원이었다가 1990년대 극심한 내전을 겪으면서 매우 복잡한 문화를 형성해 왔다. 안드리치는 어릴 때부터 이곳에서 서로 대립하는 두 세계, 즉 ‘회교도-동양’ 세계와 ‘기독교-서양’ 세계의 끊임없는 충돌과 혼합으로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를 경험했다. 그는 이런 보스니아 문화에 깊이 매료되었고, 또한 이를 특수성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 보편성의 차원으로 끌어 올릴 줄 알았다. 보스니아 3부작 외에도 백여 편이 넘는 중, 단편을 발표함으로써 그는 발칸 최고의 작가가 되었다. 1961년에는 “자국 역사의 주제와 운명을 서사시적 필력으로 그려 냈다”는 평을 받으며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았다. 1975년 83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역자
김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