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일본 근대 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구니키다 돗포의 걸작 단편선!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구니키다 돗포의 작품 세계
1. 개요
『무사시노 외(武藏野)』는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과 더불어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구니키다 돗포(國木田獨步, 1871~1908)의 걸작 단편선이다. 구니키다 돗포는 우리에게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 문학사에서 자연주의의 선구자로도 불리며 후대의 여러 유파에 영향을 끼친 작가로 평가받는다. 가령 일본 최고의 단편 작가로 불리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자신이 돗포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돗포는 그의 예리한 두뇌 때문에 지상을 보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부드러운 심장 때문에 천상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전자는 「정직자」, 「대나무 쪽문」 같은 작품을 낳았고, 후자는 「비범한 범인(凡人)」, 「소년의 비애」, 「그림의 슬픔」 같은 작품을 낳았다. 자연주의자와 인도주의자 모두 돗포를 사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돗포는 우리 근대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가령 춘원 이광수는 “일본인의 것으로는 나쓰메 소세키와 구니키다 돗포의 작품을 애독하는데, 지금도 나쓰메 것은 그렇게 재독하고 싶지 않으나 구니키다 돗포의 예술만은 늘 보고 싶다”고 했다.
이렇듯 돗포의 문학적 영향력이 적지 않았음에도 그간 우리 독자들은 그의 단편 두어 편만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에 돗포의 대표작인 「무사시노」와 「잊을 수 없는 사람」 등이 빈번히 인용됨으로써 독자들의 궁금증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고진은 ‘풍경’이라는 개념을 문학사에 도입하여 ‘풍경의 탄생’을 ‘내면의 탄생’과 동시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돗포를 일본 문학사에서 근대적 내면을 발견한 작가로 높이 평가한 바 있다.
본 책에는 대표작 「무사시노」,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겐 노인」, 「쇠고기와 감자」, 「소년의 비애」, 「그림의 슬픔」, 「비범한 범인(凡人)」, 「운명론자」, 「봄 새」, 「대나무 쪽문」 등 총 열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겐 노인」과 「대나무 쪽문」을 제외한 나머지 열세 편이 모두 국내 초역이다. 돗포의 단편집 중 어느 한 권 전체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돗포의 단편 중 걸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발표 연도순으로 실었다.
2. 작품 소개
1898년 『국민의 벗(國民之友)』에 발표한 「무사시노」는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자연 묘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는 일종의 수상문이다. 무사시노는 도쿄 중서부에서 사이타마 현에 걸쳐 숲으로 가득 찬 들판이다. 옛날 무사시노는 끝없는 억새밭 풍경으로 절정의 미를 뽐냈다고 하는데, 지금은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숲은 무사시노의 특색이라고 해도 좋다. 화자인 ‘나’는 1896년 가을과 겨울에 걸쳐 이곳의 풍경을 보고 느낀 것을 적었다. 깊은 숲속에 앉아 조용히 사방을 둘러보고 경청하고 응시하고 묵상하면서 나는 무사시노의 아름다움에 젖어든다. 자연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는 감수성, 자연을 시각적으로 파악하는 방식을 넘어선 청각적인 묘사, 섬세하고 시적인 표현 등이 실로 돋보인다.
「겐 노인」은 돗포의 첫 번째 소설로, 오이타 현 사이키에서 10개월간 교사 생활을 하며 겪은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다. 오래전에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잃고 홀로 살아가는 뱃사공 겐 노인과, 어릴 때 어머니에게 버림 받고 동구 밖 묘지에서 기거하며 동냥질하는 거지 기슈. 겐 노인은 더 이상 뱃노래를 부르지 않고, 기슈 또한 말을 잃어 버린 지 오래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한의 외로움과 시적 정취가 가득한 풍경이 대비되면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은 이름 없는 소민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문장은 돗포의 소민관을 잘 보여 준다. “오늘 같은 밤 나 홀로 밤 늦게 등불을 마주하고 있으면 인생을 고독을 느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애상을 불러일으키지. 그때 내 이기심의 뿔은 뚝 부러져 왠지 사람이 그리워지네. (중략) 그때 강하게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 사람들이네. (중략) 아(我)와 타(他)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모두 다 이승의 어느 하늘 어느 땅 한구석에서 태어나 머나먼 행로를 헤매다가 서로 손잡고 영원한 하늘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쇠고기와 감자」에서 쇠고기는 ‘현실’을, 감자는 ‘이상’을 대변한다. 어느 겨울 밤, 메이지클럽에 모인 사람들이 쇠고기주의냐 감자주의냐를 두고 논박이 벌어진다. 마지막에 주인공인 오카모토가 담담하게 말한다. 자신은 어떻게 해서든 “낡고 오래된 습관의 억압에서 탈피하여 경이의 염(念)을 가지고 이 우주를 스스로 돌아보고 싶다”고. “그 결과가 소고기주의자가 되든 감자주의자가 되든, 또 염세주의자가 되어 이 생명을 저주하든 결코 개의치 않는다”고. 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존재의 미약함에 가슴 아프게 동감하게 되는 작품이다.
「비범한 범인」은 세속적 입신출세를 거부하고 자신의 작은 목표를 향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민에 대한 예찬을 담은 작품이다. 「운명론자」에서는 우주의 신비와 인간의 기이한 운명을 매우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정직자」와 「여난」은 이기적 육욕을 대담하고 진솔하게 고백한 것이 인상적이다. 「궁사」와 「대나무 쪽문」은 돗포 말년의 작품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곡진하게 담았다. 현실주의적 작품의 수작으로 꼽힌다. 「가마쿠라 부인」은 돗포의 첫째 부인이었던 노부코라는 여인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에 대한 애증이 엿보인다. 「거짓 없는 기록」은 1896년 2월부터 1897년 1월 23일까지 쓴 돗포의 일기다. 메이지 시대 청년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그 밖에도 소년의 성장 이야기를 담은 「소년의 비애」와 「그림의 슬픔」, 한 백치 소년의 슬픈 죽음을 다룬 「봄 새」가 수록되어 있다.
“일본 근대 문학은 구니키다 돗포에 의해 처음으로 쓰기의 자유를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자유는 ‘내면성’이나 ‘자기 표현’이라는 것의 자명성과 연관되어 있다. 요절한 이 작가는 어떤 의미에서 다음 문학 세대의 맹아를 모두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가라타니 고진
“구니키다 돗포는 재인이었다. 만약 그를 무기교하다고 말한다면, 필립 모리스도 무기교하다고 말해야 한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아, 이 박행한 진정한 시인은 십 년간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인정은 받은 것은 불과 삼 년, 그리고 죽었다. 메이지 창작가 중에서도 진정한 작가, 모든 의미에서 진정한 작가였던 돗포 씨는 결국 죽은 것인가!”
- 이시카와 다쿠보쿠
“우리 문단에 많이 영향을 준 작가이지요. 간결한 작품이 맘을 끌지요.”
- 김억
“일본인의 것으로는 나쓰메 소세키와 구니키다 돗포의 작품을 애독하는데, 지금도 나쓰메 것은 그렇게 재독하고 싶지 않으나 구니키다 돗포의 예술만은 늘 보고 싶다.”
- 춘원 이광수
저자
구니키다 돗포
1871년 일본 치바 현 초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구니키다 데쓰오(國木田哲夫). 부친은 지금의 효고 현의 무사였으며, 초시의 한 여관에서 만난 하녀 사이에서 돗포를 낳았다고 한다. 부친의 근무지를 따라 야마구치 현에서 소년기를 보냈으며, 이후 1887년 도쿄로 올라와 이듬해에 현재의 와세다대학인 도쿄전문학교 영어보통과에 입학했다. 1890년에 영어정치과로 전과했으며, 청년문학회 발기인으로도 참여했다. 한편 기독교의 영향으로 이 무렵 세례를 받기도 했다. 1891년 도쿄전문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사숙을 열었다. 1894년에는 국민신보사에 들어가 청일전쟁 종군 기자로도 활약했다. 1895년 종군 기자 만찬회에서 만난 노부코와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했지만 반 년 만에 헤어졌다. 그녀에 대한 애증의 그림자는 돗포의 작품 여기저기에 드리워져 있다.
문학으로 눈을 돌린 그는 첫 단편 소설인 「겐 노인」(1897)을 발표하여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후 작품집 『무사시노』(1901), 『돗포집』(1905), 『운명』(1906), 『도성(濤聲)』(1907)을 차례로 출간함으로써 일본 근대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 매김이 되었다. 1908년 폐결핵 악화로 37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돗포의 주된 관심은 자연과 소민(小民)이라 할 수 있다. 수록 작품 중 「무사시노」는 첫째 부인 노부코와 헤어진 뒤 1896년 가을에서 1897년 봄까지 도쿄 외곽인 시부야에서 살면서 당시의 자연 관찰을 토대로 쓴 것이다. 돗포의 자연관과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대표작으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역자
김영식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계간 『리토피아』 신인상(수필)으로 등단했다. 옮긴 책으로 『기러기』, 『라쇼몽』,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등이 있고, 저서로 『그와 나 사이를 걷다 - 망우리 비명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