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박제가
밀양이 본관. 자(字)는 차수(次修), 호(號)는 초정(楚亭), 정유(貞蕤), 위항도인(葦抗道人)이다. 우부승지 박평(朴坪)의 서자로, 영조 25년인 1750년 11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1779년에 정조의 특별한 배려로 세 사람의 서얼 출신 학자와 함께 규장각 검서관으로 출사했다. 1792년에는 외직인 부여현감으로 부임했다. 1799년에는 춘당대 무과 별시에 장원으로 뽑혀 오위장에 임명되었다. 그 후 영평현령으로 부임했으나, 순조 원년인 1801년에 있었던 신유사옥의 주모자 임시발의 무고 때문에 함경도 경성부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2년 반을 지내다가 1805년 3월에 귀양살이에서 풀려 서울로 돌아왔고, 그 해 4월 25일에 45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1778년, 1790년, 1801년 세 차례에 걸쳐서 사신의 수행원으로 청나라 연경에 다녀왔다.
역자
이익성
경남 밀양 출생. 사립정진학교 졸업. 옮긴 책으로 『경세유표(經世遺表)』, 『성호사설(星湖僿說)』, 『택리지(擇里志)』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