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성의 본질과 운명을 통찰한 소외와 부조리 문학의 선구자 카프카의 대표작!
“모든 것을 제시하지만 아무것도 확증하지 않는 것이 『소송』의 운명이자 위대함이다.” - 알베르 카뮈
『소송』은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사회 체제의 형성과 과학 기술의 혁신적인 발달을 향한 20세기의 여명기에 현대성의 본질을 통찰하고 인간 존재의 근거에 대한 문제 의식을 투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더 이상 인과율의 법칙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복잡하고 불투명한 현대 세계와 이질적이고 모순적이며 다층적인 인간 주체에 대한 이중의 인식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린다는 점에서 20세기 현대 문학의 시원(始原)이 되고 있다. 카프카의 독특하고 불완전한 작품 세계는 카뮈의 『이방인』과 사르트르의 『구토』 등 실존주의 문학뿐만 아니라 표현주의 미술, 해체주의 철학, 부조리 연극 등 20세기 현대 예술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작품은 기계 문명에 의한 인간의 자기 소외와 총체적으로 인식 불가능한 세계가 대립하는 위기 속에서 개인이 무기력하게 파멸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현대인을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의해 일체의 관계를 박탈당한 채 고독한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았다.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20세기 현대 문명의 근본적인 화두를 던진다. 카프카는 이 작품에서 악몽과 같은 비인간적이고 관료적인 세상에서 인간 존재의 불안감을 표현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비리, 모순, 부조리, 수수께끼, 미궁으로 대표되는 문제적 현실 상황에 조응하는 현대 소설의 전형적 인물인 ‘문제적 주인공’이며 ‘불안한 영혼’을 포착한다. 이 작품은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더불어 20세기 독일어권 문학의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은행 차장인 요제프 K는 30세 되는 생일날에 두 명의 감시인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체포된다. 그는 처음에는 은행 동료들의 장난이나 잘못된 행정 집행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법정 심리에 참여하고 변호사나 관계인을 찾아 다니면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결국 갑자기 찾아온 사형 집행인들에 의해 잡혀 가는데......
『소송』에서 주체는 세계를 총체적으로 기술할 능력을 상실하게 되며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통일적으로 기술할 수가 없는 이중의 무능 상태가 된다. 세계는 주체의 내면 속에 주체 자신과 마찬가지로 왜곡되고 과장된 상들로 해체되어 반영되며, 그러한 현실의 묘사는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인 사건들의 뒤얽힌 연속으로 변형됨으로써만 가능하게 된다. 인과적 연관성과 합리적 설명가능성의 범위를 벗어나는 카프카 문학의 형상들은 그와 같은 문제의식과 이중적 무능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내용적 차원에서 무엇보다도 ‘죄’의 문제를 근본적인 물음으로 제기하고 있다.
존재 자체가 곧 ‘죄’이며,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죄’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몸을 가지고 현실 속에 실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그 실존적 상황은 필연적으로 ‘죄’를 초래하고, ‘죄’는 곧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다. ‘죄’의 개념은 종교적 차원을 넘어 보다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장되어 인간의 본질적 존재 양식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책은 원본의 구성과 체제를 최대한 유지한 맬콤 패슬리의 판본(Franz Kafka, Der Prozess, Kritische Ausgabe, herausgegeben von Malcolm Pasley(Frankfurt/M.: S. Fischer, 1990))을 기본으로 하고 막스 브로트 판본을 참고로 삼았다. 막스 브로트 판본은 미완성의 느낌을 주는 요소들을 배제하고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원본 텍스트 전반에 손질을 가하였다. 이에 반해서 카프카 작품의 비평본인 패슬리 판본은 작가의 의도를 살릴 수 있도록 원본의 구성과 체제를 최대한 반영하고 정서법과 구두법도 유지되었다.
저자
프란츠 카프카
20세기 현대 문학의 선구자인 카프카는 1883년에 체코 프라하에서 유대계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1년에 프라하 대학에 입학하여 화학, 법학, 문학을 공부하면서 1906년 법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교 시절인 1904년에 첫 작품『어느 투쟁의 기록』을 집필할 만큼 삶의 의미를 문학 창작에 두었으나 아버지의 강한 영향으로 법학 공부를 하였다. 졸업 후 프라하의 국영 보험회사 ‘노동자 산재보험 공사‘에서 14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밤에는 글 쓰는 것을 병행했다.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세 번이나 결혼을 통한 독립을 시도했으나 결혼이 가져오는 속박에 묶이지 않기 위해 생애의 대부분을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고 1922년 보험회사에서 퇴직한 후 , 1924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결핵 요양소에서 사망하였다. 카프카는 임종 시 친구인 막스 브로트에게 원고, 일기, 편지 등을 모두 불태워 없애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작품과 문서 등을 상당 부분 편집, 출판하여 그의 문학 세계를 대중에게 알렸다. 카프카의 주요 작품으로는 『성』, 『변신』, 『실종자』, 『판결』, 『유형지에서』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표피적인 일상의 모습을 뛰어넘어 현실과의 긴장을 지속한 채 세상에 대한 끊임 없는 존재론적 통찰을 견지한다. 그는 세계가 총체적이자 객관적으로 인식될 수 없고 개인은 주관적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절망적인 ‘출구 없는 상황’에 처한다고 직시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종속성, 전체주의의 폭력성, 관료주의의 부도덕성 등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총체적인 난맥에 묶인 개인이 세상과 적대적인 관계를 상정한 후, 보이지 않는 내면으로 깊이 침잠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외에도 카프카의 작품은 환상 문학적인 요소,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정신분석학적 접근 등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미완의 여백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는 20세기에 가장 많은 논문과 연구서가 발표된 저자 중의 하나다. 카뮈는 카프카를 실존적 인간의 효시로 보았다.
역자
이재황
서울대학교 독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본 대학교에서 2년간 수학했다. 「안나 제거스의 망명기 문학과 그 미학적 기초」에 관한 논문으로 서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상명대, 강원대에 출강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독일이야기』(공저), 옮긴 책으로 『변신』,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오페라』, 『선과 악』, 논문으로 「카오스로서의 세계 - 니체의 카오스론」, 「세기전환기의 인간상 '호모 나투라'」, 「신화를 바라보는 몇 가지 시각 - 유년기와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한 신화 고찰」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