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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세계문학전집_55

죄와 벌(상)

Prestuplenie i nakazanie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김희숙

484쪽, 128x188, 12,000원

2012년 09월 20일

ISBN. 978-89-324-0387-8

이 도서의 판매처

카뮈와 베케트로 이어지는 ‘고독의 문학’을 연 선구적 작품

미국대학위원회 추천 도서, 하버드대학교 권장 도서

 

관과 같은 좁은 방에서 사회에 관한 불온한 이념을 키워 나가던 대학생 라스콜니코프. 끊임없이 사색에 잠긴 채 자신만의 질서를 꿈꿔 오던 그는 마침내 자신이 비범한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오랫동안 계획해 오던 끔찍한 자신의 범행을 실행할 결심에 이르는데…….

『죄와 벌』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그가 그전까지 쓰고 발표한 모든 작품을 능가하는 높이와 깊이에 도달하고 있다. 묘사의 대상으로부터 묘사 주체로 올라서는 인물들, 인물에 밀착된 서술 방식, 풀 수 없는 수수께끼와 의도적인 다의성, 감춰진 생각과 말해진 생각 간의 게임, 군중 장면, 대립적인 여러 심리적 요소들의 투쟁에 의해 구성되는 인물의 성격, 상호대립적인 세계관을 논쟁적으로 다루는 방식 등, 이전의 작품들에서 이미 사용되었던 여러 방법, 장치, 모티프들은 『죄와 벌』에서 그때까지의 작품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작용력을 획득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에서 마침내 그의 작가적 정체성과 역량을 확실하게 펼쳐 보인다.

 

스탕달을 발견한 것 이상으로 도스토예프스키를 발견한 것은 나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운에 속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서적, 특히 문학 작품은 내 자신의 것을 포함해서 모두 불살라 버려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만은 예외다. 그의 작품은 모두 남겨 두어야 한다.

- 톨스토이

 

눈앞에 거대한 산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그것은 톨스토이였다. 한데 조금 떨어져 가면서 보니 그 뒤에 아스라하게 그보다 더 큰 산맥이 있었다. 그것은 도스토예프스키였다.

- 앙드레 지드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느 과학자보다도 위대한 가우스보다도 많은 것을 내게 주었다.

- 아인슈타인

 

비참한 상태에 있을 때, 고통의 한계까지 시달렸을 때, 삶 전체를 화끈거리고 욱신거리는 하나의 상처라고 느낄 때, 절망을 호흡하고 희망이 사라져 버렸을 때,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야 한다.

- 헤르만 헤세

 

 

제1부
제2부
제3부

저자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구력으로 1821년 10월 30일 모스크바의 마린스키 자선병원의 부속 건물에서 그 병원의 주임 의사이자 영락한 시골 귀족의 후손인 미하일 안드레예비치 도스토예프스키와 다감하고 신앙심이 깊었던 어머니 마리야 표도로브나 네챠예바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일찍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보이며 푸쉬킨, 레르몬토프, 고골, 셰익스피어 등의 작품을 읽은 도스토예프스키는 1846년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여 네크라소프와 벨린스키의 격찬을 받으며 ‘새로운 고골’이라는 문명(文名)을 떨치게 된다. 그러나 페트라쉐프스키 집에서 열리던 금요회에서 금지된 서적을 읽고 자유주의적인 위험한 발언을 한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도스토예프스키는 세묘노프스키 광장에서 처형되기 직전 황제의 특사를 받아 시베리아 유형으로 감면받고 옴스크로 떠나게 된다. 1854년 2월까지 옴스크 감옥에서 경험한 수형 생활은 이후 그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드리우게 된다. 1854년 3월 도스토예프스키는 국경 수비 연대에 사병으로 편입, 군 복무를 시작하는데 이때 만난 세무관의 부인인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 이사예바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두 사람의 사랑은 1857년 이사예바가 미망인이 된 이후 결혼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로부터 2년 후 소위로 임관되어 면직되고, 같은 해 12월, 10년 만에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형 미하일과 함께 잡지 『시대』를 창간하고 『죽음의 집의 기록』을 연재했으며, 1864년 『지하로부터 수기』를 『세기』 지에 발표하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이지만 아내가 폐병으로 사망하는 불행을 겪기도 한다. 1866년 『죄와 벌』을 『러시아 통보』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며, 이때 만난 속기사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스니트키나와 1867년 재혼한다. 1868년 『백치』를 역시 『러시아 통보』에 연재했으며, 『악령』을 발표하는 한편 메쉬체르스키가 발행하는 극우 성향의 주간지 『시민』의 편집장을 맡지만 1874년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한다. 이후 『미성년』(1875년), 『우스운 인간의 꿈』(1877년)을 발표한 도스토예프스키는 1879년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연재하기 시작하여 1881년 단행본으로 출간하기에 이른다. 이후 동맥 파열과 계속되는 각혈로 의식을 잃은 도스토예프스키는 1월 28일 사망하여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수도원에 묻혔다.

역자

김희숙

서울대학교 독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뮌헨 대학교 슬라브어문학과 학부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러시아 문학박사). 현재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보리스 필냐크의 장식체 소설 연구』와 역서로 블라지미르 소로킨의 『줄』, 후고 후퍼트의 『마야코프스키의 삶과 예술』, 푸쉬킨의 『스페이드의 여왕』, 『러시아 기호학의 이해』(공역), 『말의 미학』(공역), 『러시아 현대 소설 선집 1』(공역) 등이 있다.